본문 바로가기
낮책밤책

생생하게 묘사한 예술계 현장의 모습, <걸작의 뒷모습>

by 오베라 2020. 3. 23.

 

1. 크리스티 옥션, 바젤 아트페어 그리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궁금해할 일곱 곳의 현장을 담은 책이다. 인류학에서 많이 활용하는 ‘참여관찰법’으로 마치 실제 미술 현장에 있는 것처럼 서술했으며, 그 생생함은 저자의 어마어마한 인맥이 한 몫 한다. (가령, 미술계의 프리츠커상으로 불리는 터너 상 수상 현장 섹션에서는 테이트 관장인 닉 세로타의 인터뷰도 담김) 다만, 쉴새 없이 바뀌는 현대미술 세계에서 2011년 출간 책이란 사실이 아쉬울 뿐.

2. 번역서가 한글 제목을 잘 짓기 쉽지 않은데, 내용과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제'가 있는 표지도 훌륭.

3. 업계 사람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현장들을 모두 관찰해보고 싶다. (그러나 과연 언제) 더불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는 말들 중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 부지런히 옮겨 적었다.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우리는 상업적 이익을 노리고 작품을 배열하고 순서를 잡습니다. 미술사적으로, 연대기적으로, 혹은 주제별로 작품 순서를 정한다면 아마 큰일날 겁니다. 첫 열 개 품목이 잘 팔려야 돼요. 의도적으로 10번까지의 품목 속에 기존 옥션 기록을 갈아치울 만한 작품들을 심어 놓습니다. 젊고, '핫'하고, '컨템포러리'한 작품들이 경매장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12번 혹은 13번 품목에 이르러서 본격적 가격대의 작품을 등장 시킵니다.” (p.62, 뉴욕 크리스티 옥션)

미술은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가까워요. 워홀 작품도 어떤 건 북향에다, 빌딩 사이에 갇혀 있는 스튜디오 아파트 같고, 어떤 건 360도 전망을 확보한 펜트하우스 같아요. 하지만 시스코 주식은 어쨌든 다 똑같은 시스코 주식이죠.” (p.64)

적어도 여기 학생들에게 있어서 창의성이란 단어는 "미술계에 전문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이나 쓰는 닭살 돋는 진부한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 했다. 창의성이란 가짜 영웅을 천재라고 부르는 "본질주의적" 개념에 충실한 단어이다. (p.114, LA 칼아츠의 강의실)

재능은 양날의 검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졌지만 당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엇에 애쓰고 있는지, 왜 고군분투하는지, 어떤 것을 장악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어요.” (p.128)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순간이 오면, 왜 할 말이 없을까가 새로운 문젯거리가 돼요. 그리고 그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화제가 되어 토론을 이끌어 나가죠.” (p.128)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가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거예요. 글을 쓸 때마다 영향력이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는 일이 반복되죠." 결국 핵심은 진정성이다. "그것이 비평가가 작품을 사지 않는 이유이자 친분이 두터운 작가들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한 비평가가 핵심 주제, 즉 미술에 주시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라고 봐요. 다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면 자기의 영향력을 책임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어요.” (p.262-263, 뉴욕 아트포럼 편집부)

스미스는 자신이 느낀 대로, 체험한 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입장보다 자신의 안목을 우선시 할 각오가 있어야 해요.” (p.263)

"미술관은 동물원 같은 곳이지만 비엔날레는 사파리와 같습니다. 사자를 한 마리라도 구경하고 싶어 하루 종일 차를 몰고 사파리를 헤집고 다니지만 정작 눈에 띄는 거라곤 수십 마리의 코끼리인 경우가 많죠." (p.344, 베네치아 비엔날레 현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