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을 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가는 공간이 두 군데 있다. 낮에는 미술관에 가고, 밤에는 술을 즐길 수 있는 바나 펍에 간다.
두 공간은 그 나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술관에 가면 건물과 소장품, 기획전 등을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고, 술집에 가면 그 나라 고유의 술 유무 또는 어떤 술을 어떻게 마시는지를 보며 역사와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소개해 줄 만한 미술관과 술집 몇 군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움 미술관(Leeum)은 실패하지 않을 선택지다.
리움 미술관은 삼성에서 만든 미술관이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의 성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Museum이 더해져 Leeum이 됐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각각 하나의 건물씩 설계했고 (그러나 함께 있는 모습이 그렇게 조화롭진 않고) 작가 이름만 봐도 행복해지는 소장품들이 가득하다.
이번에는 상설 전시(입장료 1만원)를 보러 갔다. 아마도 2017년 올라퍼 엘리아슨 특별전 이후로 처음 방문인 듯. 리움에 가면 보통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야외 작품들부터 보는 것이 예의이기에 잠시 발걸음을 틀었다.
이렇게 맑거나 화창한 날에 세 작품을 보면 기분이 한껏 고양된 채로 입장할 수 있다. 이런 동선마저도 미술관에서 의도했을 것이다.
리움 상설전은 크게 뮤지엄1에서 하는 고미술과 뮤지엄2에서 하는 현대미술로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고미술을 제외하고 현대미술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동시대 한국미술(Contemporary Korean Art)까지 관람했다.
먼저 동시대 한국미술부터.
(여기서부터는 무음 카메라로 촬영해서 화질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설명에 적혔듯이 서도호, 양혜규, 이불을 비롯한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군번줄을 연결하여 만든 서도호 작가의 작품. 동시대 한국미술 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확대 사진 한 장 더.
그나마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했던 양혜규 작가의 작품. 제목이 확실치 않아 적지 않았는데, 아마도 서울 군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뮤지엄2에 가려고 자리를 옮기다보니, 웬 익숙한 노래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웬 코인 노래방이 자리에 있었다.
알고보니, 이불 작가의 작품. 안에 들어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었으나 차마 부르지는 못했다.
이제는 현대미술을 보기 위해 뮤지엄 2로 이동. '동서 교감' 이라는 주제로 동서양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나는 그 분들의 작품이 가득.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아니쉬 카푸어였다.
아니쉬 카푸어는 사진보다는 영상을 통해 빛이 나기에 촬영. 끝까지 봐주세요!
얼핏 보면 막 그린 것 같지만 아름다운 추상미술의 매력
한국 작가의 작품인줄 몰랐는데 명판을 확인하곤 놀랐다.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작품.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었던 작품. 우측만 보고 처음에는 윤형근 인 줄 알았다.
지난 한가람 미술관 전시 이후로 한층 관심 갖고 살펴보는 자코메티.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 있는 걸 보고 역시 삼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좋은 의미가 아니라, 놀라움의 표현.
지난 키아프(KIAF)를 통해 좋아하게 된 세실리 브라운. (심지어 인스타 팔로우도 한다) 추상과 구상이 절묘하게 결합하고 그 안에서 미묘한 에로티시즘이 느껴져 좋았는데, 이 작품은 지향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에서 소장하지 않으면 섭섭한 김환기. 그 중에서도 대표작 중 한 점이 있었다.
김환기 작품 옆에 (그의 사위였던) 윤형근 그리고 윤형근 작품 반대편에 놓여있던 작품이 마크 로스코였다. 그동안 마크 로스코와 윤형근의 작품을 보면 비슷한 심상이 떠올랐는데, 이렇게 배치한 것을 보고 감동.
그야말로 인스타그래머블한 작품.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물 또는 액체인 줄 알았는데 모두 유리라고 한다.
이우환 선생님 작품 중에서는 설치 미술보다는 유화가, <선(또는 점)으로부터>가 아닌 <다이얼로그>나 <조응> 시리즈가 있을 줄 알았는데 처참하게 틀렸다.
와, 바스키아 작품마저 있을 줄은 몰랐다.
평상시 그의 작품이 취향은 아니었으나 이 작품에는 계속 눈길이 머물렀다.
성당에 가면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올랐다. 데미안 허스트 작품 중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보기 쉽지 않은데.
마무리는 올라퍼 엘리아슨과 함께. 그의 작품은 워낙 거대해서 뮤지엄1으로 가는 계단에 있었다.
노란 빛을 내는 원이 태양을 의미하고, 태양계 순서대로 수성 - 금성 - 지구 - 화성 - 목성 - 토성 - 해왕성을 뜻하는 원 형태의 설치물이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거울을 마주하며 계단을 한 걸음씩 옮기면 기묘한 시공간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셀카를 찍게 됨.
인스타그램에서 리움 미술관을 장소 태그로 검색해보면 올라퍼 엘리아슨과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관람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끄는 작품들이기에 사랑받는 것 같다. 대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미술 작품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느 기업이나 브랜드든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랑받는 시대다.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던 상설전이었다. 현대 미술만을 보기에도 두 시간을 훌쩍 소요했고, 웬만한 국립박물관 뺨친다는 고미술전도 관람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외국인 또는 지인들이 미술관을 추천하면 삼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만 떠올랐는데, 이제는 동선을 그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봄이 오면 또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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