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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내시경을 위한 호캉스 1박 2일 살면서 마주치고 싶진 않지만, 언젠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군입대를 해야 한다거나, 찍먹의 지조를 잠시 외면한 채 부먹을 해야 한다거나, 부먹을 해야 한다거나 등. (어쩌면 이 글을 봐야만 하는 순간도) 나에겐 대장 내시경이 그랬다. 아니 세상에, 호스를 입 안에 깊숙이 넣는 위 내시경도 끔찍한데, 무려 뒤에 넣어야 한다니. (가뜩이나 대학생 때 5만원인가 아끼겠다고 무수면 위 내시경을 받았다가 역대급으로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음)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회사원처럼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없어서 스스로 건강 상태를 체크해야만 하는데,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이 되어 그 타이밍이 됐기 때문이다. 원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받기로 했으나, 친구는 예약.. 2020. 8. 11.
감쪽같이 작아지는 바람막이, <파타고니아 후디니> 기능성이 강조된 옷과 신발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상시 우산은 잘 챙기고 다니면서 방수 가능한 옷만 발견하면 괜스레 기웃거리고, 머리 속 장바구니에 늘 담겨 있는 건 발목을 살짝 덮는 첼시 레인부츠다. 방수 뿐만 아니다. 추위에 민감한 몸이라 여름철에도 냉방병을 대비하기 위해 종종 긴 팔을 들고 다닌다. 자연스레 패커블 가능한 옷에 관심 갈 수 밖에 없다. 파타고니아의 경량 재킷 후디니(Houdini)는 1990년대 초반 탈출 마술의 1인자인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에서 이름을 따왔다. 해리 후디니는 온 몸을 밧줄이나 쇠사슬로 꽁꽁 묶은 채 물 속이나 불구덩이 같은 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는 마법을 펼치곤 했다. 이 광경을 볼 때 마다 관중은 벌린 입을 애써 다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 2020. 5. 18.
생생하게 묘사한 예술계 현장의 모습, <걸작의 뒷모습> 1. 크리스티 옥션, 바젤 아트페어 그리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궁금해할 일곱 곳의 현장을 담은 책이다. 인류학에서 많이 활용하는 ‘참여관찰법’으로 마치 실제 미술 현장에 있는 것처럼 서술했으며, 그 생생함은 저자의 어마어마한 인맥이 한 몫 한다. (가령, 미술계의 프리츠커상으로 불리는 터너 상 수상 현장 섹션에서는 테이트 관장인 닉 세로타의 인터뷰도 담김) 다만, 쉴새 없이 바뀌는 현대미술 세계에서 2011년 출간 책이란 사실이 아쉬울 뿐. 2. 번역서가 한글 제목을 잘 짓기 쉽지 않은데, 내용과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제'가 있는 표지도 훌륭. 3. 업계 사람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현장들을 모두 관찰해보고 싶다. (그러나 과연 언제) 더.. 2020. 3. 23.
안타까움과 무기력함이 동시에, <착취도시, 서울> 방을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한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로 만들어 놓는 방을 '쪽방'이라 한다.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 하지만 주거기본법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최저 주거 기준은 14제곱미터(약 4.24평)의 면적, 부엌, 전용 화장실과 목욕 시설이다. 쪽방은 최저 주거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숙박업도 임대업도 아니기에 '공중위생관리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하게도 쪽방에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장애인과 기초 생활 수급자 등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하지만 이들을 상대로 '빈곤 비즈니스'가 발.. 2020. 2. 25.
신발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나이키 <슈독>에 대한 열 가지 키워드 오랜만에 두근거리며 읽었던 경영인 자서전이다. 이만큼 즐겁게 읽었던 기억은 7년 전 토니 셰이의 정도가 떠오른다. 토니 셰이가 사업 자체(어렸을 적 했던 사업 중에는 지렁이 농장, 크리스마드 카드 판매 등도 있었다)에 미친 사람이었다면, 필 나이트는 오로지 신발에 미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제목도 슈독(Shoe Dog)으로 지었겠는가. 책을 읽으면 사업이 얼마나 재밌고 또 괴로운지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마약 이상의 쾌락과 고통을 안겨주리라. 다소 두텁지만 상당히 몰입도가 높고 마지막엔 뭉클한 감동까지 안겨준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1. 일본 운동화 수입으로 시작 필 나이트는 오리건대학교를 다녔던 시절 육상선수였다. 일찌감치 위대한 선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판단했던.. 2020. 2. 21.
옆자리 대화를 통해 들을 만한, 하지만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얼핏 제목을 보면 SF로 여겨지는 이 책은 사실 일상 이야기를 다룬 단편 소설집이다. 미국 어느 시골 동네 펍에 앉아 머물다 보면 옆자리 대화를 통해 들을 만한, 하지만 (속삭이며 나눌 만한 소재인 건지)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열 편의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무언가 결여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연인이지만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거나, 사회 통념적으로 (아직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랑을 한다거나,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등 각양각색의 결핍과 상실 그리고 슬픔이 서려 있다. 더불어 읽고 난 뒤의 여운이 전반적으로 긴 편인데, 아무래도 작가가 만들어 둔 공백이 뚜렷하기 때문인 것 같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처럼 그 공백 속에 상상을 집어 넣도록 만드는 재미를 주는 작가다. 표제작인 이.. 2020. 2. 6.